석웅 Suk-Woong 2020-2024
가족들은 유독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말할 때면 말수가 줄어들곤 한다. 그 기억의 중심엔 늘 나의 외할아버지, 석웅이 있다. 석웅에 대해 물으면 가족들은 아문 자리가 헤쳐지는 것처럼 아파한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자란 나는 석웅이 가족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짓던 표정을 이해하려면 석웅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우악스러움, 삼대독자로 태어나 누린 권력, 가족들에게 행한 폭력이 징그러웠다. 나는 사진 안에서 석웅을 할퀴고, 짓누르고, 시체로 만들어 그가 죽길 바라듯 셔터를 눌러댔다.
2019년 겨울, 석웅에게 급성 쇼크가 왔다. 우렁차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의 입에선 뭉툭한 소리만 새어 나왔다. 석웅의 심장이 비친 사진에는 대동맥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고무줄처럼 늘어져 갔다. 또렷하던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사진에는 가엾은 남자만 나타났다. 노인을 향한 연민인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핑계 삼아 어물쩍 화해하고 싶은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낡아버린 몸과 죽음의 시간이 보일 때면 애처로웠다. 렌즈 너머 종종 보이던 맑은 눈동자는 마음을 간질였고, 아이처럼 굴면 귀엽기도 했다. 감정을 선명하게 하면 할수록 흐려졌다. 결국 나는 석웅을 완벽히 원망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나의 연원 한 가운데를 파고든 시간은 무색해졌고 한 인물에 대한 짙은 애증만 남았다. 여전히 석웅을 떠올리면 여러 문장이 성가시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시작도 끝도 불분명한 이 시간 속에서 나는 한 가지로 지탱할 수 없는 사랑을 보았다. 그것이 나와 석웅 사이에 남겨진 흔적이자, 이 가족이 품고 사는 흉터라는 걸 이제는 안다.